누각이나 정자를 떠올릴 때 어떤 풍경이 그려지는가? 고즈넉한 산수 속에 자리한 단아한 목조건물, 사방이 확 트인 여유로운 모습일 것이다. 정자는 단순한 풍경의 일부분이 아니라, 조선 시대 선비들의 사상과 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초다.
오늘날 정자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지만, 선비들에게 정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자연을 마주하며 마음을 닦는 수행의 공간이자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배움터였고, 벗들과 풍류를 즐기는 사랑방인 동시에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색의 장소였다.
이처럼 정자를 ‘건축물’이 아닌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으로 바라본 신간 <한국의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이 출간되었다. 한국문화 스토리 작가 이종근 국장과 동양화가 오산 홍성모 화백이 의기투합해 전국 방방곡곡의 아름다운 누정 31곳을 샅샅이 훑으며 완성해낸 인문·문화유산 기행서다.
“비움과 채움의 결정체인 한국의 정자를 수묵화로 담아냈습니다. 전국의 명소 31곳을 돌며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옮긴 책입니다.”
— 동양화가 오산 홍성모 작가
화순 환산정, 오산 홍성모 작춤, 책중에서
이 책에는 단순한 건축적 설명 대신 “왜 이곳에 정자를 세웠는가”에 대한 인문학적 답이 담겨 있다.
단종의 비극이 서린 영월 금강정, 기묘사화 이후 권벌의 절개를 품은 봉화 청암정, 경주 독락당 계정, 담양 소쇄원, 경복궁 향원정, 서울 석파정 등 정자 하나하나마다 사람의 삶과 시대의 서사가 촘촘히 연결된다.
나아가 남원 퇴수정, 안동 만휴정, 예천 초간정, 합천 함벽루, 담양 명옥헌, 대전 남간정사 등 전국 대표 명소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글을 쓴 이종근 작가가 역사와 철학을 풀어냈다면, 홍성모 화백은 같은 공간을 먹빛으로 재해석했다. 풍경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계절과 바람, 안개, 그리고 여백과 빛의 흐름을 담아 정자가 주는 감정의 결을 표현했다. 전통 진경산수의 맥을 이으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더한 그의 작품은 화려한 채색보다 먹의 농담과 여백을 강조한다. 정자에서 풍경을 바라보았을 선비의 마음을 담아내어, 여백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글이 들려주는 인문학적 깊이에 그림의 감성이 더해진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 한 폭의 산수화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느낌을 준다.
속도와 효율이 삶의 기준이 된 시대, 선조들이 남긴 정자와 정원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깊이 알아가고 싶은 이, 역사와 여행을 함께 즐기는 이,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어가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필자 또한 완도에서 윤선도의 발목을 잡은 세연정에서 그의 삶을 유추했고, 소쇄원에서 조선의 선비들이 토론했던 모습을 보았다.
최근 홍성모 화백에게 이 책을 선물받아 읽었다. 책장을 덮을 즈음 정자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역사가 함께 머무는 삶의 터전임을 깨닫게 된다.
조만간 책 속에 담긴,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그 정자들을 찾아 떠나볼 생각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깊이 알고 싶거나 역사와 여행을 함께 즐기는 사람, 정원과 한옥을 좋아하고 수묵화를 좋아하는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