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95년 6월 29일. 대한민국 현대사 최악의 인재사고였던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502명이 목숨을 잃고 937명이 다쳤던 그날이다. 그래서 참사라 표현한다.
31년이 지난 오늘, 건물은 사라졌지만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여전히 1995년 6월 29일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를 앞두고 발표된 유가족 실태조사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연구진이 180여 명의 유가족에게 일일이 연락해 어렵게 30명의 참여를 이끌어낸 조사에서, 유가족의 63.3%는 지금도 외상후울분장애(PTED) 임상 기준 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응답자의 83.3%가 참사 이후 전문가의 심리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답한 점이다. 또한 86.7%는 “삼풍백화점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오늘 세계는 또 다른 대형 재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자연재해는 막을 수 없지만, 사람의 부주의와 탐욕이 만든 반복되는 참사에 할말을 잊는다
삼풍백화점은 오래전 무너졌지만, 유가족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다. 남은 자들의 슬픔은 사회조차 우울하게 만든다.
현재, 참사 시민들을 위한 위로는 양재시민의 숲 외진 한켠에 위령탑으로 세워져 있다.

<삼풍백화점>을 만든 사람 이준…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삼풍백화점은 건설 당시부터 원 설계와 달리 기둥의 폭을 줄였다. 철근 등 자재를 작게 투입해 시공했다. 완공된 후는 옥상 냉각탑을 이전했다. 롤러스케이트장을 불법적으로 식당으로 변경했고, 지하주차장 확장을 위해 기둥과 벽 철거 등으로 건설 비용을 아꼈고 건물의 균열 등을 감추어 큰 사고를 유발했다.
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마어마한 돈을 축적해가던 이준 삼풍회장은 붕괴 사고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맞은 편 대검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았다. 그는 살인죄가 아닌 과실치사죄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된 후 2003년 4월에 만기출소했다.
출소 후에는 병환 속에서 지내다 2003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한때 막대한 부를 쌓았던 기업인의 말년은 화려했던 전성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출처, Seocho-dong Acrovista 20181123 140410.jpg
삼풍백화점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고급주거 단지인 아크로비스타가 2004년 건립되었다.
참사의 현장은 고급 주거단지로 바뀌었지만, 장소가 바뀌었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안전보다 이익을 앞세웠던 선택의 결과다.
시간은 흘렀지만 슬픔에도 유통기한은 없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