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 방문요양보호사 안전은 누구의 책임인가… 국회서 위험성평가 모델 첫 공개
재가 방문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집에서 겪는 신체적·정신적 위험과 안전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요양보호사 개인에게 맡겨져 온 안전 문제를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엔이 정한 ‘국제 돌봄과 지원의 날’을 맞아 10월 29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재가 방문요양보호사의 안전, 누구의 책임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번 토론회는 남인순·조배숙·안호영·김남희·백선희·이용우·전진숙·정춘생 국회의원과 노인장기요양공공성강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등이 공동주최하고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주관했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사적인 주거공간에서 홀로 일하며 부축과 목욕에 따른 근골격계 부담, 폭언과 성희롱, 간접흡연, 업무 범위를 벗어난 요구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고 대응할 책임은 여전히 개별 요양보호사에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12년 동안 어르신을 부축하다 척추측만증… 산재가 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재가 방문요양보호사 두 명이 현장에서 겪은 위험을 직접 증언했다.
18년 차 요양보호사인 오귀자 씨는 키가 150cm 정도 되는 어르신을 12년 동안 돌보며 겪은 신체적 부담을 이야기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르신의 허리가 점점 구부러지자 오 씨도 더 낮게 몸을 숙여 어르신을 부축해야 했다. 어르신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로 요양보호사에게 의지해 걸었으며, 오 씨는 어르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몸을 지탱했다.
어느 날부터 주변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걷는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고, 허리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은 결과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오 씨는 “그때 저는 이게 산재가 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파도 참고 일하는 것이 요양보호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르신의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도 적지 않다. 동의 없이 설치된 CCTV에 노출되거나 어르신의 실내 흡연을 견뎌야 하고, 분변으로 인한 위협을 받는 사례도 있다.
방문요양은 이용자별로 서비스 시간이 정해져 있어 요양보호사가 쉬면 어르신의 식사와 위생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일을 쉬면 소득이 줄어든다는 걱정까지 더해져 통증을 참고 일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오 씨는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어르신 댁의 위험요인과 보조기구를 점검하고, 혼자 하기 어려운 신체 돌봄에는 추가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일하다 다치지 않을 권리,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 위험을 말할 수 있는 권리,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퇴직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방문요양 현장에도 실효성 있는 위험성평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금 더 참으라가 아니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물어 달라”
이성자 재가 방문요양보호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감정노동과 고립의 위험을 증언했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서비스 시간 내내 어르신의 집에 홀로 머물기 때문에 폭언이나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즉시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
이 씨는 “어르신이 거친 말을 하시면 치매나 질병 때문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이해한다는 것이 모든 행동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도 지적했다. 이용자가 서비스를 중단하면 어떻게 할지, 자신이 조금 더 참았으면 해결됐을지 걱정하다 보니 성적인 농담이나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 위협적인 말, 서비스 범위를 벗어난 요구를 겪어도 쉽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씨는 문제가 발생하면 기관이 요양보호사의 안전을 먼저 살펴 서비스 일시 중단, 업무 조정, 다른 인력 지원, 전문기관 연계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가 일자리나 소득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가 협업해 부당한 업무 요구와 성희롱·폭언 문제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씨는 “사회가 우리에게 ‘조금 더 참으라’고 말하는 대신, ‘무엇이 위험했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함께 물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요양보호사 65만 명 중 업무상질병 산재 인정은 50명
이날 토론회에서는 방문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을 반영한 위험성평가 모델과 시범적용 결과도 처음 공개됐다.
조승규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정책위원은 고용노동부 지원사업으로 개발한 ‘방문요양보호사 위험성평가 모델’을 발표했다.
연구진이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업무상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요양보호사는 전체 요양보호사 65만4천여 명 가운데 50명에 불과했다. 만 명당 0.8명 수준으로, 전체 산업 평균인 만 명당 15명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연구진은 이를 요양보호사의 산재보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했다. 특히 상시근로자 30명 미만의 소규모 기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일수록 산재 신청 비율이 낮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번에 개발한 위험성평가 모델은 ▲부적절한 환경 ▲신체부담 ▲감염 ▲폭력 ▲부적절한 업무부담 등 5개 영역, 29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냉난방기나 목욕도구가 단순히 설치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등 방문요양 현장의 특성을 반영했다.
연구진은 올해 서울·경기·강원·충북·전북·경남에서 총 21차례 요양보호사 모임을 개최했다. 이 가운데 19차례에 걸쳐 365명이 참여했으며, 제출된 평가지 341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응답자의 54.3%가 어르신 부축을, 52.5%가 목욕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어르신의 질병이나 복용 약물 정보를 공유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51.3%에 달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위험으로는 청소나 조리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과한 지시’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인지장애·난청 등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 부축과 외출, 목욕, 적대적 태도 등이 뒤를 이었다.
물건을 가져갔다는 의심을 받거나 가족을 위한 김치와 반찬을 만들고 밭일을 요구받는 사례도 확인됐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위험성평가를 하지 않은 사업장에는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은 2027년부터, 그 외 사업장은 2028년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어르신마다 일터가 달라지는 방문요양 현장에 적합한 평가 방식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위험성평가가 형식적인 서류 작업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장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인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장에 맞는 구체적인 위험 관리 방안 발굴 ▲어르신의 체중을 지탱하는 작업 최소화 ▲수급자와 보호자에 대한 제도적 관리 도입 ▲장기요양보험 제도 안에서 요양보호사의 건강권 고려 등 네 가지 개선 방향을 제안했다.

돌봄노동자의 안전은 기관과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이어진 토론에서는 장기요양 현장과 노동·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정찬미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장은 위험을 알린 요양보호사가 일자리와 소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와 위험을 줄이는 비용의 장기요양 수가 반영을 제안했다.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공동소장은 장기요양 인정조사와 이용계획서에 안전 항목을 포함하고, 고위험 수급자는 공공 거점기관이 맡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활동가는 성희롱이나 화장실 사용의 어려움처럼 드러나기 어려운 위험까지 살피는 젠더 관점의 위험성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박지혜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과 김두진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원과 사무관이 참석해 장기요양 제도와 산업안전 제도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백도명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이사장은 기조강연에서 돌봄을 받는 사람이 안고 있는 건강·주거·가족·빈곤의 어려움이 제도적 지원 없이 돌봄노동자에게 전가되면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통합돌봄의 개인별 지원계획에 요양보호사의 안전까지 포함해 위험을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위험 대응에 필요한 비용을 장기요양 수가에 반영하고, 위험한 방문을 중단하더라도 어르신의 돌봄이 끊기지 않도록 대체인력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우 의원은 자료집에 실린 축사를 통해 “토론회의 질문인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요양보호사 개인이 아니라 기관과 지자체, 그리고 국가가 함께 져야 할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돌봄노동자의 안전을 개인의 인내와 희생에 맡겨서는 안 되며, 어르신의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 역시 사회가 책임져야 할 과제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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