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올해 아흔이다. 경기도 운길산 자락,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서 혼자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걱정스러운 생활일 수 있지만 할머니에게 이곳은 여전히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는 삶의 터전이다.
5년 간 할머니를 요양하던 같은 동네의 요양사가 병원에 입원했다. 임시로 요양사가 방문하고 있지만, 겨울이 되면 이동이 어려워 걱정이 되는곳이다.
그녀는 할머니 보다는 권사님으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혼자 밥을 짓고 반찬을 챙긴다.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지원받기도 하지만, 고기를 굽고 된장국을 끓여 먹는다. 실내 자전거를 타며 운동하고,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도 즐긴다. 교회에 갈 때면 교인들이 차를 보내주고, 마을 사람들도 할머니의 안부를 살핀다. 허리 시술을 잘못해서 걷는게 힘들었지만 다리 근육은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았다.
잘살아 온 사람의 모습이다. 아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할머니의 이야기는 길고 풍성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오래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성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소녀
할머니의 고향은 전남 장성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목포로 옮겨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할머니에게 학창 시절은 특별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목포여고 5회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면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와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 시절 할머니는 운동을 좋아했다. 농구와 배구를 했고, 운동에 대한 재능도 있었다. 조선대학교가 처음 문을 열 무렵에는 여학생 다섯 명이 선발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놀리기도 했다. “조대가 학교냐, 멸치가 고기냐.”
조선대학교의 출범을 두고 벌어진 남학생들의 놀림이었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지만, 대학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던 시절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젊은 시절에는 운동과 배움, 그리고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다만 그때의 꿈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삶으로 이어졌는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시간
할머니는 가족과 남편,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목포에서 살았던 시절과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오래전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기억력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큼 또렷하다. 흔히 주변에서는 할머니에게 ‘착한 치매’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치매라는 말만으로 한 사람의 기억과 현재를 설명할 수는 없다. 정확한 진단 여부와 상태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할머니에게 아직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다시 꺼내 놓는다. 그 기억 속에는 한때 운동을 즐기던 소녀와 목포여고 졸업생의 자부심,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용담동 95번지, 아직 돌아갈 집
할머니의 기억에는 목포의 옛집도 남아 있다. 용담동 95번지다. 지금은 친구에게 집 관리를 맡겨두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는 조만간 그곳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이야기한다. 며칠 후 나는 목포에 간다. 확인해 볼 생각이다.
아흔의 나이에 운길산 자락에서 혼자 생활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목포의 집이 남아 있는 셈이다.
그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나 오래된 주소가 아닐 것이다. 장성에서 목포로 옮겨와 학교를 다니고, 젊은 날을 보내며 가족과 삶을 꾸렸던 시간의 흔적일 수 있다.
언젠가 그 집을 다시 찾아가면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지금도 집을 관리하고 있는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용담동 95번지는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현장이다.

운길산에서의 생활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할머니는 자신이 아직 혼자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밥을 해 먹고 운동도 하며, 교회에 다니고 사람들과 만난다. 반면 주변에서는 겨울철 눈길과 외진 생활환경,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을 걱정한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방문이 어려워지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방안도 이야기되고 있지만, 할머니에게 익숙한 집을 떠나는 일은 간단한 선택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안전한 장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잃는 공간일 수 있다. 그렇다고 혼자 살겠다는 의지만으로 모든 위험을 감당하게 할 수도 없다.
이 문제는 할머니 한 사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인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어떤 돌봄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함께 물어야 한다.
아흔의 삶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과거형으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은 2~3년 쯤 살거라는 말과 함께 팔당댐을 바라보는 장소에 묻힌 남편의 옆에 함께 있을거라고 했다. 한시절 잘 살다 간다는 말씀을 하셨다. 은마아파트를 마지막으로 운길산으로 들어온 이야기도 하셨다.
목포여고 5회 졸업생이라는 자부심도, 운동을 즐기던 젊은 날도, 용담동 95번지의 옛집도 모두 현재의 할머니 안에 살아 있다. 운길산에서 밥을 짓고 운동을 하는 오늘의 일상도 그 삶의 연장선이다.
아흔이라는 나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일 수 있다. 하지만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기억과 선택, 살아온 방식까지 대신 결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할머니가 목포의 옛집을 찾아가겠다고 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에게는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며, 꺼내놓을 기억이 있다.
돌봄은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가능한 한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