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TX-B 환기구 설치를 둘러싼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환기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주민들은 설치 위치 변경을 요구하는 것일까.
먼저 환기구의 역할부터 알아봤다. 환기구는 왜 필요한가?
GTX-B는 대심도 지하터널을 달리는 철도다. 긴 지하터널에서 열차가 운행되면 터널 내부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열과 오염물질을 배출할 시설이 필요하다. 화재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연기와 열기를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이때 필요한 시설이 환기구다. 대심도 지하철도 건설과 안전한 운행을 위해 환기·배연 시설은 필요한 기반시설이다.
논란의 핵심은 “환기구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왜 하필 이 위치에 설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환기구는 지하터널과 지상을 연결하기 때문에 지상에 시설이 들어선다. 공사 과정에서는 소음과 진동, 공사 차량에 따른 보행 안전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시설이 설치된 이후에도 주변 환경과 경관, 이용 공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주거시설이나 학교, 어린이집, 공원 등 생활공간과 가까운 곳이라면 주민들이 설치 위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GTX-B 환기구 논란은 필요한 철도시설을 없애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시설을 어디에 설치하는 것이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줄일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구로구, GTX-B 환기구 위치 조정 요구
구로구는 GTX-B 구간에 계획된 환기구의 위치를 조정해 달라고 국토교통부에 요청하고 있다.
장인홍 구로구청장은 9일 김태병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을 만나 고척스카이돔 인근과 오류동역 주변에 계획된 환기구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대안 마련을 건의했다. 현재 구로구 구간에는 11번과 12번 환기구가 계획돼 있다.
12번 환기구는 고척스카이돔 인근 풋살구장에 설치될 예정으로, 주민들은 교육·생활환경과 보행 안전, 소음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며 위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11번 환기구는 오류동역 인근에 계획돼 있다. 구로구는 주변 주거시설과 어린이집 등을 고려해 공사와 시설 운영이 주민 생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로구가 제시한 대안은 오류나들목 인근 녹지대를 환기구 부지로 검토하거나, 두 환기구를 통합하는 방안이다.
구는 특히 기존 위치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지역과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향후 대안 마련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구로구는 지난 3월부터 국토교통부와 국가철도공단, GTX-B 사업자, 시공사 등에 환기구와 관련한 주민 우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청해 왔다.
이날 구로구는 GTX-B 환기구 문제와 함께 신구로선 조속 추진과 구로차량기지 이전 등 지역의 주요 철도 현안에 대해서도 국토교통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요청했다.
장인홍 구로구청장은 GTX-B 사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환기구에 대해서는 가능한 대안을 다시 검토하고, 국토교통부가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해결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로만의 문제일까
GTX-B 환기구를 둘러싼 논란은 구로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선이 지나가는 다른 지역에서도 환기구의 위치와 설치 방식,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여의도 구간에서는 당초 샛강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환기구가 여의동로로 위치가 변경됐다. 영등포구는 샛강 침수 가능성 등을 검토한 뒤 샛강 제외지 설치 가능성을 다시 분석하고 위치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마루공원에서는 환기구 설치에 따른 공원 면적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영등포구가 인근 녹지대로 이전하거나 여의도역 환기구와 통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구로구 구간에서는 고척스카이돔 인근 풋살구장 일대의 환기구 설치 계획을 두고 주민들의 우려가 제기됐으며, 구로구의회도 위치 변경을 촉구한 바 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에서는 환기구 공사와 관련해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인천 백운공원에서도 환기구 위치 변경 과정과 사유지 보상 문제 등을 둘러싸고 주민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동대문구 용신동 일대에서도 환기구 설치에 따른 시설 집중 등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한 시설, 그러나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
GTX-B는 수도권의 교통환경을 바꾸기 위해 추진되는 대규모 철도사업이다. 빠른 교통망을 원하는 시민들에게는 필요한 사업일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기반시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과 우려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환기구는 철도 안전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질문은 하나다. 필요한 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정해진 위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술적·안전적 조건을 충족하는 범위에서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다른 위치와 설치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인가.
GTX-B 환기구 논란은 결국 이 질문으로 모인다.
“필요한 시설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요한 시설이라면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