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만으로는 더 이상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양극화와 삶의 질 문제는 오히려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분석에 따르면 지니계수가 0.01 상승할 경우 장기적으로 1인당 GDP가 약 4.5% 감소할 수 있다. 이는 소득 격차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장 자체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사장 최태원)이 3월 10일 서울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2026 가치와 성장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저성장 돌파구, 솔루션 변화’를 주제로 경제 성장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정책 전문가, 기업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불균형의 시대: 경제 성장과 사회 가치의 분리’를 주제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사회는 이은주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으며,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원장과 임동균 서울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임동균 교수는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격차와 삶의 질 등 사회적 지표는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니계수가 0.01 상승할 경우 장기적으로 1인당 GDP가 약 4.5% 감소할 수 있다는 세계경제포럼 분석을 소개하며 소득 격차가 단순한 분배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장 자체를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구조에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사회적 번영’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원 원장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잠재성장률 하락을 꼽았다. 그는 성장 중심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소득 격차와 양극화가 지역 불균형, 인구 소멸 등 다양한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정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단기 처방이 아니라 경제 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통해 성장의 기초 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명은 실장이 ‘SPC(Social Progress Credit)를 통한 가치 기반 성장’을 주제로 발표했다. SPC는 사회문제 해결 활동에서 발생한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인정해 보상하는 구조다.
이 개념은 2013년 최태원 회장이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시한 이후 국내에서 약 10년 동안 실험적으로 운영됐다. 그동안 468개 기업이 참여해 약 5364억 원 규모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고, 이에 비례해 약 769억 원의 현금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성과 분석 결과 SPC 참여 기업 가운데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사회적 성과를 약 3배 더 창출했다. 또한 SPC 참여 기업은 미참여 기업보다 매출이 평균 34% 높게 나타났다. 정 실장은 사회문제 해결 활동이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자원이 될 수 있으며, 성과 기반 인센티브 구조가 기업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해 온 기업가들의 경험이 공유됐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와 김정현 우주(WOOZOO) 대표가 패널로 참여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실제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소개했다.
김정빈 대표는 AI 기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을 사례로 들며 재활용 참여 시민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를 통해 환경 문제 해결과 경제적 보상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정현 대표는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 사업 경험을 소개하며 사회문제 해결과 기업의 성장 목표는 반드시 충돌하지 않으며, 적절한 사업 모델이 설계될 경우 두 가지 가치가 함께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최태원 회장과 윤호중 장관이 정책과 기업의 관점에서 새로운 성장 전략을 논의했다. 사회는 장용석 연세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윤 장관은 사회문제 해결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민간 혁신이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성장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본법 제정 추진과 금융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가 단순한 성장 둔화가 아니라 내수 부족과 사회적 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GDP 증가만을 성장의 기준으로 삼는 기존 방식으로는 양극화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복지 비용과 사회 갈등 비용이 계속 증가해 결국 경제 성장 자체를 제약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측정과 보상 시스템 구축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을 개최한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는 과거에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성장의 의미였다면 이제는 그런 분리적 사고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포럼이 ‘가치가 성장의 조건이 될 수 있는지’를 제도와 구조 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