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프린세사에 있는 지하강(Puerto Princesa Underground River)은 필리핀 팔라완 섬의 중심 도시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세인트폴 지하동굴 국립공원은 199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고, 2011년에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 생물다양성 보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산림 생태계이기도 하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는 이곳 지하강을 비롯해 아마존 우림, 하롱베이, 이과수 폭포, 제주도, 코모도 국립공원, 테이블 마운틴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숨이 멎을 듯한 장소들 사이에 팔라완의 지하강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하강 동굴의 전체 길이는 약 8.2km.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과 석순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돼 있고, 거대한 석실도 여러 개 존재한다. 가장 큰 석실은 폭 120m, 높이 60m에 달한다고 한다. 다만 관광객이 실제로 탐험할 수 있는 구간은 약 4.3km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려는 운영 방식이 인상 깊었다.

보트를 모는 젊은이들 상당수는 지역 자원봉사자다.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된 오디오 가이드를 나눠주고, 동굴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자제해 달라고 안내한다. 동굴 입구 바위에 새겨진 낙서를 보며 “이것도 훼손”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지하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느껴졌다.
동굴 투어 자체는 약 1시간. 나머지 6~7시간은 이동과 대기, 또 대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가성비 논쟁이 많은 코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팔라완까지 와서 세계자연유산을 눈앞에 두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흔히 ‘지하강’이라 부르지만, 공식 명칭은 ‘언더그라운드 리버(Underground River)’다.
지하강 투어는 바닷길을 이용한다. 파도가 심하게 높거나 기상이 악화돼 바닷길이 통제되지 않는 한, 비가 와도 대부분 정상 운영된다. 오히려 큰 변수는 비보다 바람과 파도다. 자연 앞에서는 일정도, 사람도 모두 겸손해진다.
팔라완은 세계적으로도 맹그로브 숲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필자에게 맹그로브 나무는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맹그로브 숲을 만끽하고 싶었는대, 아수비게도 기대만큼 맹그로브 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피해 다닌건가? ‘맹그로브 반딧불 투어’에서도 배를 타고 깜깜한 어둠을 가로지르는 경험만 남았다. 거긴 맹그로브 숲이라 했다. 자연은 언제나 기대만큼 보여주지는 않는다.

지하강 가는 길
팔라완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580km 떨어져 있다. 제주도의 약 12배 크기이며, 일본처럼 길게 늘어진 섬이다. ‘팔라완’이라는 이름은 중국어에서 유래했으며 ‘아름답고 안전한 항구와 땅’이라는 뜻을 지닌다. 섬의 중심에 푸에르토 프린세사가 있고, 북쪽으로 5시간을 달리면 엘니도, 남쪽으로 5시간 이상 내려가면 발라박이 있다.
필리핀 팔라완에서 약 20일을 머무는 동안 지하강 투어는 한동안 일정에서 빠져 있었다. 실제 탐험 시간은 45분~1시간에 불과한데, 이동과 대기 시간을 합치면 8~9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성비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행 중 이 투어를 선택한 사람은 필자 혼자였다.
지하강은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약 50km 거리다. 오전 7시 50분, 리조트 앞으로 벤이 도착했다. 두 팀이 함께 탔다. 벤은 몇몇 호텔을 돌며 사람들을 태우고 지하강으로 향했다. 지하강 투어 비용은 2,700페소, 짚라인은 옵션으로 550페소였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짚라인’이라는 설명에 혹해 바로 신청했지만, 실제 장소는 다소 소박했다. 대신 암벽을 오르고, 바위산을 넘고, 좁은 동굴 같은 길을 지나야 했던 여정이 실망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줬다. 가는 길 자체가 작은 모험이었다.
한국인 혼자에 스페인 사람 두 명, 나머지 여덟 명은 필리핀 현지인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첸과는 이후 페이스북 친구가 됐다. 20대 아가씨들과도 유난히 친해졌다. “미스 킴” 하며 챙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글을 정리하며 돌아보니, 필리핀의 젊은이들은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해서인지, 어른에게도 친구처럼 다가오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참 따뜻한 시간이었다.
지하강 투어의 첫 관문인 선착장에서 허가증을 기다리는 데만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많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날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배를 타고 10분쯤 이동한 뒤, 물을 첨벙첨벙 건너 해변으로 올라섰다. 원숭이 두 마리가 장난치듯 따라오며 숲길을 함께 걸었다. 또다시 배를 기다린 뒤, 아주 작은 보트를 타고 지하강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오디오 번역기를 받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투어가 시작됐다. 동굴 안을 도는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후 현지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짚라인을 탔다. 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뜻깊었던 건 장소도 좋았지만 사람도 남았다는 시실이다. 첸, 줄리, 아나, 유튜브를 찍던 그녀, 반딧불 투어와 짚라인을 함께하며 “해숙!” 하고 불러주던 이무르까지.
“자매들 같지 않니?”라는 말에
아들은 “할머니 왜 이러세요?”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즐거웠다. 그녀들은 사진 찍기를 정말 좋아했다.
지하강 투어를 하며 이들이 자기 지역의 자연을 얼마나 아끼는지 느꼈다. 문득 단양 온달산성 인근의 8.2km 동굴이 떠올랐다. 요즘은 동굴이 주목받는 시대인가 싶다.
필리핀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어서야 이 글을 완성한다. 그만큼 천천히 가라앉힌 여행이었다. 팔라완의 지하강은 ‘보는 곳’이라기보다, 사람과 자연을 함께 기억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