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AI·위성·빅데이터 활용한 재난예방과 지역사회 대응 강화
기후변화로 극한기상이 잦아지면서 재난 대응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재난이 발생한 뒤 피해를 수습하는 데서 벗어나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행동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 경제의 재난관리 당국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21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제19차 APEC 고위급 재난관리 당국자 포럼에서 재난 대비와 회복력 강화를 위한 지역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는 조기경보시스템, 재난위험 금융, 인공지능(AI), 데이터 거버넌스, 선제적 대응, 지역사회 대비 등이다.
최근 아시아·태평양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재난은 이러한 논의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태풍 돌핀으로 기록적인 강우와 홍수가 발생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강한 지진으로 인명 피해와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집중호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이어졌다.
재난의 양상이 국경을 넘어 연결되고 복잡해지면서 한 국가의 대응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재난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 후 행동’이다
이번 논의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재난관리의 중심이 ‘대응’에서 ‘예방과 선제적 행동’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경보시스템도 단순히 위험을 알려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위험을 감지하고 예측한 뒤 정보를 전달하고, 관련 기관이 협력해 실제 대피나 보호조치를 취하는 과정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응급관리부 관계자는 조기경보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위성 원격탐사, 사물인터넷 등을 재난 대비체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한다면 재난 피해를 줄일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느냐와 함께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느냐이다.
AI는 재난을 예측하는 기술을 넘어 의사결정을 돕는다
AI 역시 재난관리의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성 원격탐사와 지리정보시스템(GIS), 각종 데이터를 AI와 결합하면 위험지역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재난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재난 대응체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누가 관리하고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기관들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할 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함께 해결돼야 한다.
결국 AI 시대의 재난관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와 사람, 기관의 협업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재난 대응체계의 변화를 더욱 재촉하고 있으며 재난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 기상당국에 따르면 중국 북부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집중호우는 1990년대와 비교해 평균 약 50% 증가했다.
과거의 재난 경험을 기준으로 미래의 위험을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가 달라지면 위험의 빈도와 강도, 발생 지역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난관리 역시 과거에 발생했던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 어떤 위험이 발생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분석하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APEC이 조기경보와 재난위험 금융, 데이터, AI 등을 함께 논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난이 발생한 뒤 투입되는 비용보다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피해를 줄이는 데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재난 대응의 마지막 주체는 사람이다

이번 포럼에서 기술만큼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지역사회다.
정부와 국제기구, 민간기업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재난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단체인 국제적십자·적신월사연맹(IFRC)과 함께 진행된 논의에서는 정부와 인도주의 기관, 지역사회, 민간부문의 협력 필요성이 강조됐다.
지역의 대응 역량을 높이고 비상물자 공급체계를 갖추는 한편 여성과 청년의 재난 대응 참여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이는 재난의 피해가 지역사회에서 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주민이 경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막기 어렵다.
APEC의 이번 논의는 재난관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재난이 발생하면 구조와 구호, 복구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위험을 사전에 찾아내고 조기경보를 발령하며, 필요한 경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자원과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AI와 위성, 빅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기술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로 얻은 정보를 실제 행동으로 연결해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재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어느 지역도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재난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재난이 올 가능성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사회다.
APEC이 이번 포럼에서 강조한 재난 회복력 역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방과 대비, 대응과 복구를 각각의 단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만들고, 기술과 정책 그리고 지역사회의 역량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재난은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난이 가져올 피해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