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홍성모 산수화가의 영월 스튜디오를 찾아
영월 팔괴리의 높은 언덕에 자리한 오산 홍성모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집 언덕에 차를 세우고 돌아서니 시야가 탁 트였다. 멀리 남한강이 흐르고 그 길목에 정양교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 건너편으로는 계족산 자락의 정양산성이 마주 보인다. 산과 강, 성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홍 작가의 이층 작업실은 그 풍경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홍 작가는 주중의 절반을 영월에서 보낸다. 요즘은 영월의 나루터를 재현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서울 작업실에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토요일에는 대학원 강의도 나간다. 무주의 33경을 그리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그가 그동안 해온 작업의 규모를 들으면 영월의 풍경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영월 동강 64km를 64m의 그림으로 압축해 ‘동강사계’를 그렸다. 이제 시선은 무주 33경으로 향하고 있다.
그림만 그리는 사람은 아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6~7km를 걷거나 달린다. 철저한 관리를 통해 자신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니 지금의 그는 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일찍 생을 마칠 수도 있는 삶이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했다.

빨간 옷을 입은 홍 작가는 집을 지은 이야기부터 마당과 작업실에 관한 이야기까지 쉼 없이 들려주었다. 집을 지은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작품을 그리는 일만큼 작품을 남기는 일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너른 마당에는 고추와 가지, 옥수수 등 여러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작품과 관련된 자료들이 빼곡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창밖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툭 트인 창가에는 재봉틀 다리로 만든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조각품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특별히 꾸며놓은 공간이라기보다, 작가의 생활과 작업이 한데 섞여 있는 공간에 가까웠다.
잠시 앉아 홍 작가가 손수 말렸다는 산목련차를 마셨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이곳에서 왜 그가 영월의 산과 강, 마을을 그리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전라도 부안이 고향인 홍 작가에게 영월은 고향이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어린 시절 영월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고, 오랫동안 영월을 오가면서도 정작 주변의 마을과 풍경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귀촌한 뒤에야 상동과 모운동 등 영월 곳곳을 새롭게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곳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가 붙인 이름은 ‘고향 공부’였다.
고향에서 태어났다고 고향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떠나 있던 시간이 길수록 돌아온 사람에게 고향은 오히려 새롭게 발견해야 할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홍 작가는 나를 ‘녹전 아가씨’라고 부른다. 그렇게 불리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다. ‘녹전 아가씨’라 불리는 나 역시 고향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홍 작가에게 영월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된 듯하다.
그는 영월의 7개 면과 57개 마을을 들여다보며 각 마을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그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이야기의 경계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이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면 언젠가는 설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영월의 기억을 수집하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림은 그렸는데, 어디에 남길 것인가?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차례 이야기가 작품의 ‘보존’으로 돌아왔다.

홍 작가뿐 아니라 오랜 시간 작업해 온 작가들에게 작품을 보관하는 일은 현실적인 고민이다. 작품이 수천 점, 수만 점으로 늘어나도 그것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다음 세대에 보여줄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홍 작가는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를 직접 마련하려 했다. 실제로 수장고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에게 작품은 팔고 끝나는 물건만은 아니다. 어딘가에 남아 누군가에게 다시 보여지고,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인터뷰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질문 하나가 생긴다. 한 작가가 평생 그린 그림은 누구의 자산이 되는가.
작가 개인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와 한 지역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역은 그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보여줄 것인가. 홍 작가의 작업실에서 나눈 이야기는 결국 이 질문으로 이어졌다.

작업실 창밖에는 여전히 남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정양교각과 정양산성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영월의 산이 이어진다.
홍 작가는 또 그림을 그릴 것이다. 영월의 나루터를 그리고, 동강을 그리고,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제는 무주의 33경을 그리려고 한다. 어쩌면 그에게 그림은 풍경을 옮겨놓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풍경과 기억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오래 남겨두는 일같은거 말이다.
그날 작업실에서 마신 산목련차 한 잔과 창밖의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곳은, 때로 그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