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주 월요 칼럼, 노인의 ‘화’, 우리 사회의 침묵이 만든 불꽃
“옛날엔 흉기를 들어도 ‘설마, 휘두르시겠어’ 싶었죠. 근데 요즘은 정말 휘두르시니 무섭습니다.”
한 경찰관의 이 말이 오래 맴돌았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노인 범죄’ 기사들. 한때 생계를 책임지던, 지혜로운 어르신들이 왜 화염방사기를 들고, 왜 지하철에 불을 지를까요?
그들의 분노는 단지 ‘나이 들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존엄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이들이 내지르는 절규에 가깝습니다.
존재감의 붕괴, 자존감의 무너짐
자존심은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쉽게 무너집니다.
자녀와 떨어져 살고, 일터에서도 밀려나고,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일도 없는 삶. 더 이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감각은, 마음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갉아먹습니다. 분노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조용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자존감을 연구한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말했습니다.“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우리 어르신들은 지금, 버림받았다는 감각에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도, 사회도, 아무도 듣지 않는 말
말을 걸 상대가 없을 때, 사람은 점점 감정 표현을 잃어갑니다. 정서지능이 위축되고, 감정은 축적됩니다. 고립된 노인의 마음속에는, 수십 년간 말하지 못한 울분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버려진 가족, 끊긴 대화, 무너진 공동체.“당신의 이야기를 들을게요.”이 한마디가 절실한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른의 얼굴을 쓴 ‘상처 입은 아이’
교류분석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어른의 자아’와 ‘아이의 자아’를 동시에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노인 범죄자들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면에 상처 입은 아이를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 좀 봐줘. 나를 좀 이해해줘.”그 아이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어르신의 ‘화’를 식히는 길
노인을 단지 ‘도와줘야 할 존재’로만 보는 시선을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관계 회복입니다.
-퇴직 후에도 사회적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기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
-‘정서 검진’이 일상이 되는 복지 시스템
이러한 변화는 범죄 예방을 넘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그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폭주 노인의 범죄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그분의 분노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려 했는가?”
이제는 어르신들의 ‘화(火)’를 막기 위한 냉정한 대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슬픔과 외로움을 따뜻하게 들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분노는 들불처럼 번지지만,한 사람의 진심 어린 관심은 그 불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신원주 : 대림교육연구소 소장, 휴먼인큐베이터 프로그램, 미엘린독서 프로그램 개발자, 자존감 행동연구 전문가)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