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중국> 마지막 여정..쿤밍의 서산용문
곤명에 있는 서산을 방문한 4월 5일은 중국의 청명절 기간이라 관광 나온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덴츠(곤명)호수는 중국의 6대 호수라고 불리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남북으로 40km, 동서로 8km로 호수라기 보다는 바다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서산은 해발 2500m이며 주로 도교사원인 서산용문은 구석구석 보인는 작품들을 사람이 일일이 조각했다. 도교 수행자들이 건설한 조각상들과 암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동굴은 먹씨 집안 3세대 72년 간을 90도 절벽 위에 줄을 매달고 거꾸로 서서 조각하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서산에 있는 서산용문은 쿤밍(곤명)시 서산구 덴츠서안의 서산산맥 주봉에 위치하고 있는 유명한 도교사원이다. 북쪽에는 삼청각, 남쪽으로 달천각(하늘에 닿는 누각)에 이르는 좁고 긴 절벽의 길이(66.5m)를 가지곳이다. 이 절벽 길에서 곤명시와 곤명호를 바라보며 걷는 좁은 길은 신비로운 기운 속에서 깨어나 마치 자신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곳에서 신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중국의 지명은 여러가지로 불려서 헷갈린다. 복잡다단한 이름을 한번 정리해보자. 윈난성(운남성), 운남성의 옛이름이 덴츠, 쿤밍은 곤명, 용문은 롱먼, 서산은 시산이라 부른댄다. 필자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했다.
가장 좋았던 것이 곤돌라를 타며 경관을 즐기며 올라간 거다. 이 곤돌라를 삭도라고 하던가? 한국의 곤돌라나 케블카는 너무 빨리 도착해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무려 20분간을 타는 코스다. 이야기하고 데이트하기 딱 좋다. 꼭 타보길! 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서 거꾸로 내려오면서 주마간산 격으로 관람하는데도 두 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이곳에서 4 가지는 꼭 만져야 한다고 가이드가 강조했다. 원래는 올라가면서 만져야 하는데 순서를 거꾸로 했다. 먼저 용문에서 처음 만지게 된 것이 여의주다. 여의주는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는 성취의 의미다. 발돋움을 하고 기어코 만졌다. 마음속 기원을 하며..
두번째는 효우촌이다. 효도를 받고 싶으면 송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면 된다. 하여 그곳은 빤질거렸다. 15년 전 자금성을 갔을 때 주물로 만든 용의 몸체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손이 참으로 무섭다. 아래 내용을 보면 머리가 아니라 뿔을 만지는 것이 더욱 효도를 받을 수 있을 것같다
전설에 따르면 조오라는 백정이 암소와 송아지를 사서 죽이려고 칼을 들었는데 문밖에서 급한 소리로 부르기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어미 소를 잡으려고 하자 송아지가 그 칼을 얼른 삼키고는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조오는 송아지의 효심에 탄복하여 어미 소와 송아지를 모두 살려 주었다.
시간이 지나 가뭄이 극심하던 어느 해, 어미 소를 잡으려던 주인의 칼로 송아지가 판 효우천’ 물이 나지 않아 산 아래로 내려가 물을 길어다 먹었는데 송아지가 뿔로 바위를 쪼아서 샘물이 나게 해서 은혜를 갚았다 해서 효가 제일 먼저라고 한다.
세번째는 거북이와 거북이를 휘어감은 뱀..이들은 지금 싸우고 있는 중이다. 싸우고 있는 뱀의 머리를 먼저 만지고 거북이 머리를 만지면 무병장수 하게 된다네.
네번째 만진 용은 재물신이 타고 있는 호랑이의 목구멍에 손을 넣으면 부자가 되고, 손을 깊어 넣으면 재물이 생긴다나… 필자는 저 속에서 1위안을 득템해 탄성을 받았다.
부자가 될 거라고 복권 사라고… 재물을 얻고, 무병장수하고, 효도를 받고, 소원성취를 이루었다.

윤성호 가이드의 교훈적인 옛날 이야기 하나 더.
24시간 향을 태우는 사찰에 사는 동냥을 하고 있던 거지가 궁금증이 일었다. 보살님(부처님)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데 사람들이 고기를 갖다 주는 등 많은 숭배를 하더란 거지.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보던 거지가 보살님께 요청했지. 자신도 그 자리에 앉고 싶다고. 보살님은 “당신도 여기 앉아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 그런데 3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무엇을 보던가 어떤 것을 느끼든가 입만 열지 말고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야한다” 였다.
거지가 그 자리에 앉았더니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이 절을 하고 재물을 공양했다.
제일 첫날에 찾아온 이는 4세대가 함께 사는 어마어마한 부자로 이번 생은 너무도 만족하니 다음 생애도 인간으로 태어나 똑 같이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공덕을 쌓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절을 마치고 나가다 절의 문턱에 걸려 넘어질뻔 했지만 돈주머니가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두번 째 온 사람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농군으로 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고 돌아가다 돈주머니를 발견,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집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돌아갔다.
세번 째 사람은 바다에 나가는 어부로 무사 기원을 하고 절을 나가는데 돈주머니를 잃어버린 부자와 만나 시비가 붙었다. 내놔라, 나는 모른다 …옥신각신하며 경찰에 가자고 고함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거지.. 보살께서 보고도 듣고도 침묵하라 했건 만 선량한 마음이 참아 내지를 못하고 본대로 사실대로 입을 열었다. 이러이러했다 라고. 하여 돈주머니를 농부로부터 찾아갔다.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 다음 날, 바다에 나간 어부는 풍랑이 일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밤 그 돈으로 의사를 부를 수 있었던 농부의 어머니는 사망했고 공덕을 쌓고자 기원했던 부자의 부자는 공덕은 날아갔다.
거지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세 사람 모두 잘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경찰서에 구금된 어부는 다음날에 바다에 나가지 않았을 거고, 농부는 그 돈으로 의사를 불렀을거고, 부자는 자신의 소원대로 공덕을 쌓았을 것이다. 거지는 선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는데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한 이야기…불교의 교훈이라 한다. 여러분은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서산용문은 명나라 초년(1522), 청나라 황제인 함풍제 3년(1853년)에 개척되었으며 봉황암, 자운동, 달천각, 운화동 및 석굴을 잇는 잔동 통로로 구성되어 있다.
원조, 부조 도교 신선 22존, 길금 서수 28마리를 비롯하여 신안, 보병, 향로, 깃대촛대 등의 조형은 치밀하고 조예가 뛰어난 예술 작품이다. 석벽 돌기둥에는 76점의 비각 영련이 있는데 그 가운데 원가곡, 조번, 진영창 등 대가들의 작품이 적지 않다.
서산용문은 윈난성 도교 석굴암군의 대표적인 사례로 그 배치 구상, 조형물의 형태와 조합 배합은 윈난과 쿤밍지역의 유.석.도 문화와 민간 소수민족 신앙이 어우러진 특징을 나타낸다. 선명하고 둑특한 지역문화 특색을 지니고 있다. 1993년 11월 16일 윈난성 인민정부는 서산 룽면을 성급 문화재 보호 단위의 네 번째로 발표했다.
보호범위는 동쪽으로 애변, 서쪽으로 태화전, 무진주 외연 30m, 남쪽으로 용문외연 30m릎 경계로 북쪽으로는 매표소까지다. 조성통제 지역은 동쪽으로 벼랑, 서.남쪽으로 보호법위 외연 60m를 경계로 북쪽으로는 섭이묘 조성통제지대가 경계선이다.
서산용문의 안내문을 번역하여 옮기는 것이라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최선을 다했다.

삼청각은 서산 나한산 중턱에 있다. 삼청각 건물은 덴츠 수면위로 300여 미터 높이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을 따라 지어졌다. 삼청각 누각을 겹쳐서 각기 지세를 안고, 복도의 허리가 휘돌고 , 처마가 높이 쪼아져 장관을 이루며 뛰어난 경관 조성이념과 건축예술을 구현하고 있다.
원나라 때 양나라 왕이 이곳에 피서대를 세웠다. 서하객의 ‘유태화산기’ 에 의하면 명숭전 연간에 삼청각 건물군이 상당히 번성하였다고 한다.
당시 삼청각은 남암과 북암으로 나뉘었고, 많은 다락방들이 동쪽으로 바다와 마주보고 잘벽 사이를 두고 있었다. 남암의 여러 건물들은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모두 무너져 내리고 유적만 남아있다. 북암은 개.증축을 거듭하면서 현재의 9층 11각 건물이 형성됐다.

도교는 중국 전통민족 종교로 신선사상을 근본으로 음양, 오행, 복서, 무축, 참위에 도가의 철학을 도입하고 그 위에 불교, 유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도의 종교다. 고대사회의 귀신숭배사상과 샤머니즘, 전국시대의 신선사상, 노자의 도가 사상과는 결이 다르다고 하나 결합되어 있다. 불로장생을 위한 신선이 되는것이 목표이기도 했다.
도교의 창시자(여러설이 있음)는 동한말의 장능(張陵)으로, 장사제라 불린다. 그의 손자 장노(張魯)는 한나라 중엽 정교를 건립하고 정권을 잡았는데, 후에 조조를 따랐다고 한다. 불로장생을 위한 신선이 되는것이 목표이기도 했다.
도교의 주신인 옥청, 상청, 태청을 삼청이라 하는데 이 삼청을 모시는 곳이 삼청전, 이곳에서 도교제사를 주관하던 소격서가 있었던 곳이 지금의 청와대 뒷편 쪽 삼청동이다. 소격서는 폐지되었다. 물맑고 산좋고 인심좋아 삼청동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철저한 성리학, 주자학의 핵심인 도학자였던 조광조가 소격서 폐지를 주장하면서 기묘사화로 이어지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그 도와 저 도를 분별하기 귀찮다. 여튼 이것저것 붙여가면서 오늘의 도교가 된 중국의 도교사원에서 4가지를 다 만졌으니, 게다가 횡재까지 했으니 남은 인생이 판판대로라고 믿고 왔을 뿐이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