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 전쟁 76년차다. 국군(경찰 포함) 63만 명, 유엔군 15만 명을 포함 78만 명이 전사,전상,실종되었다.
북한군, 중공군, 군인 피해만도 총 281만 명, 1952년 3월 15일까지 발생된 전재민의 수가 천만 명을 넘어섰다. 휴전 때까지 이 숫자는 훨씬 늘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전체인구의 1/2 이상이 전화를 입었다.
따라서 피해를 입지 않은 가족이 없었으며 전․사상자의 혈육과 이산가족 등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6·25전쟁의 연장선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전쟁은 단순히 사람의 생명만 앗아간 것이 아니다. 가족을 찢어놓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집단적으로 한 번 ‘억장이 무너진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집단으로 의식, 무의식으로 억장이 무너졌고, 그 후유증을 감당해야 했다. 억장이 무너져 죽음을 택하고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전쟁만이 아니다.
말을 풀면 사람이 보인다. 감정을 언어로 복원하는 이야기를 하면 단어를 재정의하며 사람을 알아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계속 참는 사람은 결국 억장이 무너지며 감정을 무시하는 사람과는 관계가 끊어진다. 자신을 잃는 선택은 어느 순간 손절하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한이다. 언어 속에 숨겨진 언어를 끄집어 내는 마음의 단어들을 알아봄은 유익할 것이라 여긴다.
이 마음의 단어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무너짐이 아니라, 드러남이다. 사람을 읽어내는 글들을 수면으로 내와 해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날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낸다. 그런데 어떤 순간,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에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억장이 무너졌다.”는 표현을 한다. 단지, 슬픔을 드러낸 언어가 아니라 버텨온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말이다.
‘억장’은 가슴과 속,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를 뜻한다. 臆(억) : 가슴, 마음 깊은 곳, 腸(장) : 창자, 내장으로 가슴과 속, 마음의 중심부를 뜻한다.
옛사람들은 감정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과 배 속에서 일어난다고 느꼈다.
그래서 슬픔도, 분노도, 한도 다 “속이 무너진다”, “장이 끊어진다”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마지막 중심이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참고, 넘기고, 괜찮다고 말하며 자기 감정을 뒤로 미뤄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중심이 버티지 못하고 툭, 하고 내려앉는다. 그게 바로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가족 안에서,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오랫동안 버텨왔다. 그만큼 오래, 깊이 버텨왔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 참아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짐, 마음의 중심이 내려앉는 느낌이다.
그래서 비슷한 표현으로 “간이 찢어진다” “오장이 무너진다” 같은 말들이 있다. 언어는 인간이 겪어온 시간을 저장하는 그릇이다. 그 안에는 시간 + 경험 + 감정의 층이 들어 있다. 막연한 감정에 구조가 생기고, 설명 못하던 고통이 언어로 표현되고, 혼자만의 느낌이 인류 공통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언어를 들여다보면 사람의 삶이 보인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은 마음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진실이 비로소 밖으로 나온 순간이다.
얼마 전 한 드라마 속 학교폭력 장면을 보면서 나는 첫 회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통쾌함을 이야기했지만, 내게는 한 아이가 무너져가는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에 나의 억장이 무너졌다.
지금도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더욱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게되는 날이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슬픔의 과장이 아니다.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버텨온 인간의 마지막 목소리다.
- ‘억장이 무너지다’를 첫 번째로 꺼낸 것이 조금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삶은 순서대로 아픔을 주지 않는다. 어떤 이는 애간장이 타는 세월을 오래 살고, 어떤 이는 환장할 일을 먼저 겪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가장 늦게 오기를 바라는 말이 하나 있다. 억장이 무너진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