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끝, 달마산 능선 위에 서면 왜 이곳을 ‘남도의 금강산’이라 부르는지 알게 된다. 높이 489m. 숫자는 낮다. 하지만 능선은 공룡의 등처럼 12km를 뻗어 있고, 암릉은 칼날처럼 서 있다. 한 발 옮길 때마다 바위가 발바닥에 말을 건다. 왼쪽으로는 다도해, 아래로는 해남 평야가 열린다. 산이 아니라 바위의 척추 위를 걷는 느낌이다.
2024년 7월의 마지막 날, 미황사의 일주문 왼쪽에서 시작되는 달마고도 17.74km 트래킹을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주르륵 땀이 흐르는 한 여름이였다.
미황사의 일주문 왼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개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조용히 앞을 지나쳤다. 험상궂게 생겨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는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짖지도 않았다. 그저 앞서 걸었다.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하고 멈추면 그도 거리를 두고 기다렸다.
어느 순간 웃음이 났다. “뭐야, 너.” 신기한 마음으로 친밀함이 느껴지는 순간 그는 사라졌다.
트래킹을 마치고 미황사에 들어섰을 때, 아미와 타미의 사진을 보았다. 어느 날 절에 들어와 스님들의 보조가 된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수행을 한고 있는 듯 했다. 트래킹에서 만난 게 아미였다.

달마산 트래킹 길은 가을이면 좋았을까?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무릎이 따라 주지 않았다. 5km 거리를 남겨두고 결국은 택시를 불렀다. 미황사 주차장까지 거액을 지불했다.
다음날은 도솔암에서 시작했다. 달마산 트래킹을 이틀 간 한거다. 도솔암 정상에 섰을때, 안개에 휩쌓인 진도와 완도의 환상적인 모습에 영혼을 적셨고, 도솔암의 근사함에 숨이 막힐 듯 했다. 보름달이 비치는 날, 그 암자에 기도를 하노라면 하얀 바위에 반사된 달빛이 도솔암으로 스며들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가져온다는 스님의 말씀에 동경을 가졌다.
암릉은 칼날처럼 서 있고 뜨거운 바람은 말없이 지나갔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중턱에 미황사가 앉아 있다. 보물 제947호 대웅보전은 천일간의 해체보수에 들어갔다. 세월을 덜어내는 중이다. 지금쯤 재탄생 했을까?
설화에 따르면, 바다에서 돌배가 떠밀려 왔고 금빛 부처와 경전, 검은 소가 함께 도착했다. 소가 멈춘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美)’를, 금빛에서 ‘황(黃)’을 따 미황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산에 있는 이 절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미황사는 신라 때(749년) 의조화상이 창건했다. 고려 때는 남송의 달관, 군자 등이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몇번의 불사를 일으킨 수난의 사찰이였다.
서산대사 진법군고로 스님들이 모두 바다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후 미황사는 100년 간이나 페허가 되었다. 1989년 즈음, 지운스님과 현공, 금강스님이 주인 없이 비어있던 미황사에 들어서면서 퇴락한 법당을 일으켜 세우고 잡초 무성한 마당을 쓸기도 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 부도암 등이 하나하나 복원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자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지붕이 너무 낡아 기도를 하다보면 흙이 우드득 떨어질 정도라 천일 불사에 들어갔던 미황사의 모습이 다시 보고 싶다.

달마산 달마고도는 완만한 구간도 있지만 암릉 구간은 긴장감을 준다. 그 덕분에 시야가 열린다.
사계절 걷기 좋지만 특히 해질녘의 능선은 놓치기 아깝다. 땅끝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이 산이 품은 가장 깊은 장면이라 한다. 보지 못했다.
완주하지 못해도 괜찮다. 달마산은 한 번에 정복할 산이 아니다.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걷고 싶어지는 산이다.
남도의 끝자락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달마산은 충분히 몸으로 겪어볼 만하다. 또한, 달마산의 진짜 절경은 정상이 아니라 시간에 있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