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해보니…선돌은 서 있는 돌이다. 말그대로 붙여놓은 이름인데 무슨 뜻일까를 오래 고민했다. 직관이 사라진 사고를 보면서 “나도 참” 하는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월을 뽀개보자며 마음을 먹었기만 늘상 알지못한다는사실이다. 알고보니 선돌은 서울에서 내려올 때 늘상 지나던 곳, 38번 국도 소나기재에 있었다. 알면서도, 옆에 두고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우매함을 깨달을 뿐이다.
70m 높이의 기암괴석 한쌍이 마주보고 있는 선돌 앞에 섰다. 와우, 어찌 자연이 저러한 형태를 만들었을까? 커다란 바위가 두개로 쩌억 갈라진 틈, 그 배경이 되는 강과 마을, 산의 모습은 붙여놓아도 떼어 놓아도
뒤로 펼쳐진 강물과 다리, 혹은 마을과 산들의 어루러짐은 멋진 한폭의 그림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제76호인 선돌은 커다란 기둥모양으로 서 있다고 하여 선돌이라 불린다. 고생대 석회암에 발달한 수직의 갈라진 틈(절리)을 따라 암석이 부서져 내리면서 기둥 모양이 되었다. 또한 주변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석회암이 깍여 수직의 절벽도 발달해 있다. 영월읍 방절리 서강 주변, 소나기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경치가 너무 좋아 신선암이라고도 불리운다. 전설에 의하면 선돌 아래동네 남애 마을에 장수가 태어났고, 적과 싸우다 패하여 투신한 소(깊은 물)에 자라바위가 되었다.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가지는 이루어 진다고 하는 설화가 있다.
1905년 고종 42년에 목탄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석축을 쌓아 확장공사 기념석이 자연석에 남아있으며 ‘광무9년 이춘화배로수칙을사 2월1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무 9년은1598년이며 이”춘화배로수칙”은 봄철인 2월 1일에 산신령들과 함께 산행하거나 봄의 시작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풍년과 행복을 풍속으로 사람들의 동행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문화적인 행사였다.
1820년 순조때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1735~1827), 풍류문장가 오희상(1763~1833), 홍직필(1776~1852)등 세사람이 구름에 쌓인 선돌의 경관에 반하여 시를 읊으며 선돌의 벽에다 ‘운장벽’이라 쓰고 붉을 주색을 칠했는데. 지금도 남아있다.
선돌하단에서 단종 유배길을 경험하며 걸을 수 있다.

너답뉴스 김해숙 기자 youdabnews@naver.com